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8월 종파사건 (문단 편집) ==== 중국과 소련의 영향력 ==== 중국은 [[6.25 전쟁]] 당시 막대한 물자와 군사력을 북한에 지원하였기 때문에 연안파를 통하여 북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게다가 1958년도까지는 전쟁 방지라는 명분 아래 중공군도 북한 내에 진주하고 있었다. 또한 소련은 한국전쟁 당시 방관의 자세로 북한에게 많은 실망을 안겨주기는 했지만 부인할 수 없는 세계 초강대국이자 공산주의 진영의 지도국가였다. 또한 소련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설립 이후부터 8월 종파 사건 이전까지 사실상 북한을 [[위성국]]으로서 간접 지배하고 있었다. 즉, 북한은 소련은 물론 중국의 내정간섭을 일정 부분 용인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중국과 소련은 [[김일성]]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일단 김일성이 [[중소결렬|중국과 소련의 분열]]을 이용하여 양쪽을 오가면서 삥을 뜯었고 덕분에 북한은 엄청난 외교적 이득을 보았다. 이들은 이런 김일성을 "배은망덕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1970년대까지 소련으로 하여금 "우리 말 더럽게 안 듣는 동쪽의 작은 나라"라는 인식을 갖게 하였고 1980년대에는 변화하지 않는 북한을 두고 조롱거리로 삼기까지 이른다. [[박노자]]의 말에 따르면 당시 많은 가정에서 ~~독소전쟁 때나 사용했던 수준의~~ 북한 선전책자를 구독해서 '''유머 잡지'''처럼 활용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안드레이 란코프]]는 북한을 동맹국으로 인식한 적이 없으며 소련 지도층은 북한을 매우 싫어했다고 증언했다. TV조선의 [[모란봉 클럽]] 프로그램에 출연한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는 당시 소련에서의 북한에 대한 인식은 '''이상하고 웃긴 나라, 미친 독재국가'''였다고 발언했다. 그래서 김일성 대신 각각 자신들과 친밀한 인사들이 정권을 잡았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중국과 소련은 김일성의 반대파인 [[박헌영]]과 [[최창익]], [[김두봉]]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박헌영은 모스크바의 국제레닌대학을 졸업하고 소련에서도 활동하였으며 '조선의 레닌'이라는 말까지 있었을 정도로 국제적으로도 명망 있는 공산주의자였다. 소련과 중국은 여러 차례 박헌영을 죽이지 말고 중국 또는 소련으로 보낼 것을 김일성에게 요구하였는데 김일성은 눈치를 보다가 결국 박헌영을 제거해버렸다. [[김무정]]은 숙청된 후 중국의 요청으로 인하여 중국으로 보내졌다. 특히 [[마오쩌둥]]은 김일성이 중국과 상의도 없이 연안파를 대거 숙청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시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